[우리말로 깨닫다] 뉴욕 커피숍에서-외래어 받침 표기법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제목을 보면 약간 낭만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햇볕 좋은 날에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다가 테라스가 좋은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낭만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오늘은 좀 딱딱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외래어의 받침 표기에 관한 내용이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받침 표기다. 스펠링을 잘 알고 있으면 있을수록 받침을 많이 틀린다. 설명도 논리적이지만 틀리게 하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서 앞에서 언급한 커피숍을 커피숖으로 쓰는 경우다. 어떤 사람은 발음에 충실하여 커피샾으로 쓰기도 한다. 둘 다 틀린 표기이다. 우리말에서 외래어의 받침은 7개만 쓸 수 있다.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 받침에 쓸 수 있다. 따라서 ㅍ 받침을 쓴 ‘숖’은 틀린다.
그러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질문을 할 것이다. 아니 스펠링이 P로 끝나는데 왜 ㅍ이 아니라 ㅂ으로 쓰냐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말도 덧붙이리라. 이런 질문에 효과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면 맞춤법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맞춤법은 맞고 틀리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뿐 아니라 왜 그렇게 쓰는지 설명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선생님의 경우라면 더욱 ‘왜’라는 질문에 답하여야 한다.
왜 7개만 쓸까? 보통 설명을 할 때 받침에서 소리 나는 대로 7개만 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금방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면 7개에는 왜 디귿이 포함되지 않고, 시옷이 포함될까 하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발음을 해 보면 디귿으로 나지 않는가? 받침의 발음이 시옷으로 나는 경우도 있는가? 이런 이유 때문에 슈퍼마켓의 경우에 ‘슈퍼마켙’이나 ‘슈퍼마켇’으로 틀리기도 한다. 스펠링으로는 티읕이 맞고 발음으로는 디귿이 맞다고 생각해서 생기는 문제다.
외래어의 받침을 7개만 쓰는 이유는 한국어의 받침법칙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7개만 발음되기 때문이다. 디귿을 안 쓰고 시옷을 쓰는 이유는 뒤에 조사가 붙는 경우를 생각해서이다.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가 오는 경우의 발음을 생각해 보면 외래어의 받침 표기법이 쉽게 이해된다. [슈퍼마케테] 가거나 [슈퍼마케데] 가는 사람은 없다. [슈퍼마케세] 간다고 발음해야 한다. 따라서 디귿이나 티읕이 아니라 시옷을 써야 하는 것이다. 사실 외래어의 받침 표기는 정확하게 발음 방법에 의거해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외래어 받침이 뒤에 나오는 모음과 연음되어 발음될 때 본래의 발음이 나온다면 표기법은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커피숍을’을 발음할 때, [커피쇼플]로 발음한다면 커피숖이라고 썼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 커피쇼플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커피쇼블]로 발음한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만약 ‘뉴욕에’를 [뉴요케]라고 발음한다면 ‘뉴욬’이라고 써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발음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보기도 하는데 이는 어설프게 한국어를 배운 외국인이 하는 실수인 경우다. [뉴욕케서 커피쇼플 갔는데 ~]라고 발음하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외래어의 받침 표기는 매우 논리적이다. 우리의 발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뒤에 오는 모음과 연이어 발음을 해 보면 쉽게 받침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컵, 포스트잇, 로봇이 맞다. 지명도 마찬가지다. 코네티컷이라고 써야 한다. 외래어 받침의 수수께끼가 풀렸기 바란다.